사기 계약 취소 가능할까요?
1. 들어가며
일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계약을 맺으며 살아갑니다. 부동산, 자동차와 같은 큰 거래부터 휴대폰 개통, 헬스장 등록 같은 작은 계약까지 다양합니다. 그런데 만약 상대방의 거짓말에 속아 계약을 체결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민법은 이러한 경우 계약을 취소하고, 지불한 돈을 돌려받을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바로 '기망(欺罔)에 의한 의사표시의 취소' 제도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어떤 경우에 '사기'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 그 요건과 방법에 대해 실제 사례와 함께 알기 쉽게 알아보겠습니다.
2. 계약 취소의 첫 단추, '기망행위'란?
'기망'이란 쉽게 말해 상대방을 속이는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법원은 "재산상 거래 관계에서 서로 지켜야 할 신의와 성실의 의무를 저버리는 모든 적극적 또는 소극적 행위"를 기망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8도6984 판결).
기망행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 적극적인 거짓말, ‘적극적 기망’
이는 명백한 허위 사실을 고지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평범한 수입 시계이면서 "오랜 전통을 지닌 명품 브랜드의 한정판 제품"이라고 속여 고가에 판매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가맹점 계약 시 "우리 소스는 100% 진짜 꿀을 사용한다"고 거짓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대구지방법원 2013. 10. 17. 선고 2013노1476 판결).
나. 알려줘야 할 것을 알려주지 않은 것, ‘소극적 기망(부작위에 의한 기망)’
때로는 침묵이 더 큰 거짓말이 되기도 합니다. 마땅히 알려주어야 할 중요한 사실을 일부러 숨기고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입니다.
법원은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해당 법률행위(계약)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이를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2123 판결).
예를 들어, 돌잔치 전문 뷔페 운영자가 건물주로부터 명도소송을 당해 가게를 비워줘야 할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2년간의 장기 돌상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며 보증금을 받았다면 이는 소극적 기망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2014. 2. 7. 선고 2013고단663 판결).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이미 독점 판매권을 주어 자신에게는 독점권을 줄 능력이 없으면서,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새로운 독점 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기망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12. 1. 선고 2016노3754 판결, 울산지방법원 2016. 6. 30. 선고 2016노33 판결).
3. '사기'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기 위한 4가지 조건
모든 거짓말이 계약 취소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계약을 취소하려면 다음 네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가. 조건 1: 상대를 속이려는 ‘기망행위’가 있었는가?
가장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마땅히 알려야 할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상품 광고에서 "우리 집이 최고!"라고 말하는 정도의 다소의 과장이나 허위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지만, 거래의 중요한 사항에 관해 구체적인 사실을 속이는 것은 기망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2022. 3. 8. 선고 2021가단254380 판결).
나. 조건 2: 속일 의도, 즉 ‘고의’가 있었는가?
상대방이 나를 속여서 계약을 체결하게 하려는 명백한 '의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기망의 고의'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실수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경우와 구별됩니다. 민법상 사기 계약 취소는 상대방의 재산을 뺏으려는 목적(편취 고의)까지는 필요하지 않고, 오직 '속여서 계약하게 하려는' 의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부산지방법원 2021. 9. 15. 선고 2020나64644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3. 5. 선고 2025가단81730 판결).
다. 조건 3: 단순 과장광고를 넘는 ‘위법성’이 있는가?
모든 거짓말이 위법한 것은 아닙니다. 상거래 관행상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의 과장 광고는 기망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래의 중요한 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신의성실의 의무에 비추어 비난받을 정도로 허위 고지했다면 위법성이 인정됩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2022. 3. 8. 선고 2021가단254380 판결).
예를 들어, 지역주택조합이 사업 성공의 핵심인 토지확보율이 10%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70~80%를 확보한 것처럼 속여 조합원을 모집하거나, "추가 분담금 없음"이라고 계약서에 명시하고 도장까지 찍어주며 안심시킨 경우는 단순 과장을 넘어선 위법한 기망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2022. 3. 8. 선고 2021가단254380 판결).
라. 조건 4: 그 속임수 때문에 계약을 했는가? ‘인과관계’
상대방의 기망행위와 나의 계약 체결 사이에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 관계, 즉 '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즉, "만약 그 거짓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관계가 성립해야 합니다.
꿀이 들어가지 않은 소스를 사용하는 것을 알았다면 가맹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구지방법원 2013. 10. 17. 선고 2013노1476 판결), 독점적 광고 수주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사 설립 계약을 맺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12. 1. 선고 2016노3754 판결).
4. 속아서 한 계약,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가. 취소의 의사표시
사기 계약임을 입증할 요건이 갖춰졌다면, 상대방에게 계약을 '취소한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해야 합니다. 구두로 할 수도 있지만, 추후 분쟁을 막기 위해 '내용증명 우편'을 통해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소송을 통해 취소의 의사표시를 할 수도 있습니다.
나. 취소의 효과: 계약은 처음부터 없던 일로
계약이 취소되면 그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소급적 무효)이 됩니다. 따라서 양 당사자는 계약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을 의무, 즉 '원상회복 의무'를 집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받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돌려주고, 상대방은 내가 지급했던 계약금, 대금 등을 전액 반환해야 합니다.
5. 사기 계약 피해를 막기 위한 실전 팁
1) 꼼꼼한 확인은 기본: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상대방의 설명이 사실인지 최대한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구두 약속은 효력이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중요한 내용은 반드시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2) 증거 확보: 계약서, 홍보물, 문자 메시지, 통화 녹음 등 계약과 관련된 모든 자료는 잘 보관해 두어야 합니다. 이는 훗날 상대방의 기망행위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3) 신속한 대응: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는 법으로 정해진 기간(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기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신속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4) 전문가와 상담: 사기 계약인지 법적으로 다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요건을 충족해야 하므로, 혼자서 고민하기보다는 변호사와 상담하여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하고 효과적입니다.
6. 맺음말
달콤한 말에 속아 잘못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법은 부당한 기망행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내가 체결한 계약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