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와 ‘인과관계’

성실하게 일해 온 근로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질병.

당연히 '업무상 재해'라고 생각하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불승인' 통보서일 때가 많습니다.

통보서에 적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문구는 많은 분을 좌절하게 만듭니다.

도대체 '인과관계'가 무엇인지, 산업재해 승패를 가르는 핵심,

'인과관계'의 법적 의미와 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알기 쉽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산재 승인의 첫 관문, '상당인과관계'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질병 등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연결고리, 즉 '상당인과관계'입니다.

중요한 점은, 법원이 요구하는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100% 명백하게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법원은 근로자의 나이, 건강 상태, 근무 환경, 업무 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업무와 질병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추단(추리하여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 인과관계를 인정합니다.

즉, 100%의 확신이 아니라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2. 근로복지공단이 '인과관계'를 부인하는 흔한 이유와 법원의 판단

가. "원래 있던 병, 나이 들어 생긴 병 아닌가요?" (기존 질병 및 퇴행성 변화)

공단이 불승인하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퇴행성 변화" 또는 "기존에 있던 질병"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설령 근로자에게 기초 질병이나 퇴행성 변화가 있었더라도, 업무 부담으로 인해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되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합니다.

실제로 15년 이상 용접 및 그라인드 작업을 수행한 근로자의 무릎 연골 파열에 대해, 법원은 기존에 무릎 치료를 받은 기록이 있더라도 무릎에 부담이 가는 작업을 장기간 수행하면서 질병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되었다면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2014. 11. 11. 선고 2013누26639 판결).

반면, 근무 전부터 어깨 치료 이력이 있고 근무 기간이 비교적 짧은 경우, 업무가 질병을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시켰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승인 처분이 정당하다고 본 사례도 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2024. 5. 8. 선고 2023누67127 판결).

결국 핵심은 '내 일'이 내 병을 얼마나 '더' 나쁘게 만들었는지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나. "특별히 다친 사고도 없었잖아요?" (누적 손상 및 신체부담업무)

근골격계 질환은 특정 사고 없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발생합니다. 이처럼 사고가 없다는 이유로 불승인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반복적인 동작, 부적절한 자세 유지 등 '신체부담업무'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거나 악화된 경우 업무상 재해로 폭넓게 인정합니다.

한 예로, 18년간 벽체·천정 도색, 예초 작업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의 어깨 질병에 대해, 법원은 여러 업무가 모두 팔과 어깨를 많이 사용하는 '신체부담업무'에 해당하고, 이러한 작업이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는 점을 들어 업무 관련성을 인정했습니다 (부산고등법원 2019. 5. 15. 선고 2018누11916 판결).

또한, 쇼핑백 접기 작업을 단 2개월간 수행했지만, 하루 평균 230~350개의 작업량과 손목에 부담을 주는 자세를 고려하여 단기간의 집중적인 작업도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청주지방법원 2020. 11. 5. 선고 2019구합1017 판결).

다. "업무 외 다른 원인이 있었던 것 아닌가요?"

법원은 업무 외적인 요인(과거 사고, 취미 활동, 개인 질병 등)이 질병의 주된 원인이었는지도 면밀히 살핍니다.

인과관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업무 외 다른 원인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업무의 영향이 더 컸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유리합니다.

법원은 근로자의 어깨 질병에 대해 업무 외적인 요인인 외상, 스트레스, 과도한 운동 등이 있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는 점을 인과관계 인정의 근거 중 하나로 삼았습니다.

반대로, 과거 교통사고로 인한 수술 이력 등이 있고 현재 업무와의 관련성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 인과관계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부산고등법원 2021. 10. 20. 선고 2020누11032 판결).

3. '인과관계' 입증, 무엇이 중요한가?

결국 '인과관계' 싸움은 '증거'의 싸움입니다.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서 이를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인과관계를 판단합니다.

- 구체적인 업무 내용: 얼마나 무거운 물건을, 어떤 자세로,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등 업무의 강도, 시간, 자세, 속도를 구체적으로 정리한 자료

- 의학적 소견: 주치의 소견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 자문의, 법원 감정의 등 여러 전문가의 의견이 종합적으로 고려됩니다. 특히, 여러 의사의 의견이 엇갈릴 때 법원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등 업무와 질병 간 관련성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의사의 의견을 더 비중 있게 고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발병 경위 및 치료 내역: 언제부터 통증이 시작되었는지, 어떤 치료를 받아왔는지, 건강보험 요양급여 내역 등 객관적인 기록

4.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면?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결정이 끝은 아닙니다.

법원은 공단의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재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면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인과관계'의 벽은 높고 단단해 보이지만, 법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차근차근 증거를 준비한다면 넘지 못할 산이 아닙니다.

부당한 불승인 처분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포기하지 마시고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여 소중한 권리를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Next
Next

학교폭력, '형사고소'와 '학폭위'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