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연인에게 성병을 옮은 경우, 형사 고소 할 수 있나요?
연인 사이의 깊은 신뢰가 깨지는 순간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대방으로부터 성병(STD)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만큼 큰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도 드물 것입니다.
특히 헤르페스 2형 바이러스와 같이 완치가 어렵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라면 신체적 고통을 넘어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특히 형사고소가 가능한지 궁금해하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상황에 따라 형법상 '상해죄'로 형사고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으며, 몇 가지 중요한 법적 쟁점을 넘어야 합니다.
1. 성병 감염, 형법상 '상해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상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외상이나 골절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형법에서 말하는 상해는 그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판례는 상해를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병 감염은 신체의 건강 상태를 불량하게 변경하고 정상적인 생리적 기능을 훼손하는 명백한 '상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행위로 인해 성병에 감염되었다면, 이는 형법 제257조 제1항의 상해죄 구성요건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형법 제257조 제1항).
2. 가장 큰 쟁점: 상대방의 '고의'를 입증할 수 있는가?
상해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 '고의'가 있었음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즉, 상대방이 자신의 성병 보균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성관계를 하여 당신을 감염시켰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실제 사건에서 "내가 너를 감염시키겠다"는 식의 명확한 고의(확정적 고의)를 입증하기는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감염 가능성을 알면서도 '설마 괜찮겠지' 혹은 '감염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성관계를 하는 '미필적 고의'가 쟁점이 됩니다.
법원은 여러 사건에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여 유죄를 선고한 바 있습니다.
● 피고인이 헤르페스 성병 보균자임을 진단받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콘돔 등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성관계를 하여 감염시킨 사안에서 법원은 상해죄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2024. 10. 24. 선고 2024고단1149 판결).
● 심지어 과거에 음성 판정을 받은 적이 있더라도, 이후 다시 의심 증상이 발현되어 병원 진료를 받았다면, 감염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아 미필적 고의를 인정한 사례도 있습니다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2020. 5. 27. 선고 2019고정122 판결).
3. 또 다른 난관: '인과관계'의 증명
'고의'와 더불어 형사고소에서 가장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인과관계'입니다.
즉, 피해자의 성병 감염이 오직 그 상대방과의 성관계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상대방(피고인)이 성관계 당시 해당 성병의 보균자였다는 사실
본인(피해자)은 상대방과 성관계를 갖기 전에는 해당 성병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
상대방과의 성관계 이후 해당 성병에 감염되었다는 사실
만약 본인에게 다른 성관계 파트너가 있었거나, 상대방과 헤어진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인과관계를 증명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실제로 한 사건에서 법원은, ①피고인이 성병 양성 판정을 받은 시점과 공소사실에 기재된 성관계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고, ②피해자가 피고인과 헤어진 후 3개월이 지나 양성 판정을 받아 다른 경로로 감염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③피고인과 피해자에게서 검출된 바이러스 유형이 일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6. 19. 선고 2023고정1194 판결).
결론: 신중한 접근과 철저한 증거 확보가 관건
연인에게 성병을 옮은 경우, 형법상 상해죄로 형사고소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았다는 '고의'와, 상대방으로 인해 감염되었다는 '인과관계'를 명확한 증거로 입증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본인과 상대방의 진단 기록, 검사 결과지 등 객관적인 의료 기록은 물론, 상대방이 자신의 질병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카카오톡 대화나 통화 녹음 등의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연인에 대한 형사고소는 법적인 절차를 넘어 감정적으로도 매우 힘든 과정입니다.
따라서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에 앞서,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증거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검토하고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여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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